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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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 ‘일본군위안부’란

Ⅱ.본론 – 1.일본군 위안부 피해사례
1) 김모 할머니 사례
2) 두 번째 사례
2.일본군 위안부 관련 운동
1)미국하원의회에서 하원121호 결의안
2)위안부 할머니 수요집회
Ⅲ.결론



본문
-사례를 밝히기 앞서
우리의 아픈 역사인 식민지 시기에 관한 연구가 아직도 발전의 초기단계에 있는 상황에서, 이 시기에 우리 민족이 당한 수난에 대한 자각이 새롭게 사회저변으로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위안부의 문제는 지난 몇 해 동안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매우 심각하게 제기되어 왔다.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원폭피해자, 군인, 군속 등의 다른 식민지 시기 피해문제와는 달리, 현단계에 있어서 군위안부 문제의 주안점은 우선 진상을 밝혀내는 일이다. 그만큼 이 문제는 지금까지 철저히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피해자들의 증언과,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발굴된 ‘극비’ 군문서를 통하여 군위안부의 문제는 차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증언과 문서자료는 실상을 밝혀내기에 아직 미흡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문서자료가 일본군과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하고 우선적인 과제는 피해자들의 경험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들의 생생한 체험담은 기존의 문서자료에서 밝혀진 사실을 재확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밝힘으로써 새로운 문서자료의 발굴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교수 정진성의 해설



1.일본군 위안부 피해사례
1) 김모 할머니 사례
김복동 할머니(가네무라 후유코, 요시코)

1926년 5월 1일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나는 양산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가 그만두고 집에 있었다. 어머니가 세월이 수상하니 나다니지 말고 집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 되던 해인 1941년 언니들은 일본놈들한테 끌려간다고 전부 시집을 보냈다. 나는 나이가 아직 어리니 괜찮을 것 같아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 동네의 구장과 반장이 계급장이 없는 누런 옷을 입은 일본사람과 함께 우리 집에 왔다. 치마저고리를 입었던 것으로 보아 봄이나 가을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사람들이 우리 어머니에게 “데이신타이에 딸을 보내야 하니 내놓으세요.”라고 했다. “아들이 없으니 딸이라도 나라를 위해 보내야 하지 않아요? 그것도 하지 않으면 아주머니는 반역자가 되어 여기서 살지 못해요.”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데이신타이가 뭐예요? ” 라고 물으니군복 만드는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이요. 3년만 일하면 되고, 그 전에라도 시집가게 되었다고 고향에서 연락을 하면 보내주니 안심하고 보내시오. 3년


본문내용

1)미국하원의회에서 하원121호 결의안
2)위안부 할머니 수요집회
Ⅲ.결론
Ⅰ.서론‘일본군위안부’란
이들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강제로 전선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하였으며, 전후에도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 여성들이 강제로 동원되었으며,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여성들이 가장 많았다. 각국 피해자들과 민간 단체 및 정부, UN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일본에 진상규명과 정당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는 오랫동안 정신대(挺身隊)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으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정신대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시

참고문헌
http://www.womenandwar.net/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http://www.nanum.org/나눔의 집 홈페이지
http://www.cybernanum.or/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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